여섯 해를 한 획으로 그리면, 이 회사의 심볼이 됩니다.
2020 — 문제를 정리해 건네는 일
2020년, 기획자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화이트보드 앞에서 요구를 받아 적고, 회의실에서 우선순위를 다투고, 밤에는 화면 설계서의 화살표를 다듬는 일이었습니다.
기획자의 일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문제를 정리해서, 만드는 사람에게 건네는 일."
좋은 훈련이었습니다. 뭉쳐 있는 요구를 쪼개는 법, 말로 온 것을 화면으로 옮기는 법, 여러 사람 사이에서 범위를 지키는 법. 지금 문제해결집이 손님의 요청을 받아 정리하는 방식은 전부 그 6년에서 왔습니다.
다만 갈증이 같이 자랐습니다. 정리한 것을 건네면 제 일은 끝났고, 만들어진 것은 언제나 남의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잘되면 만든 팀의 공이고, 어긋나면 기획 탓이었습니다. 건네는 사람 말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해마다 조금씩 커졌습니다.
퇴근 뒤의 사이드 프로젝트들은 그 마음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들에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마감이 없으니 끝도 없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완성했다"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갈증은 취미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거기서 배웠습니다.
2025 — 개인으로, 바닥부터
2025년 10월, 회사 이름도 팀도 없이 개인으로 시작했습니다. 원칙은 하나만 세웠습니다. 기획서가 아니라 돌아가는 것을 만든다.
처음엔 연습이었습니다. 작게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었습니다. 기획자로 6년을 일했는데도 "내 손으로 끝까지"는 처음이라, 바닥부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한 스타트업 팀과 실전을 함께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마감이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참여가 쌓이는 캠페인 지도, 다섯 군데로 흩어진 명단 2,536명의 통합, 세 갈래 참여를 사이트 하나로 묶은 행사.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키워드 분석 도구군에는 상반기를 통째로 쏟았습니다.
이 지면의 완료작들은 전부 그 시기의 산출물입니다. 기획만 하던 6년으로는 몰랐을 것을 거기서 배웠습니다. 크게 약속하는 기획서보다 작게 만들어 빨리 확인하는 쪽이 언제나 셌고, 문제가 생기면 회의 대신 고친 화면으로 답하는 쪽이 빨랐습니다.
2026 — 문제해결집
2026년 9월, 문제해결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름에 일하는 방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푼 문제를 압축해 두었다가(zip), 다음 문제에 꺼내 쓰는 집. 기획 6년이 앞에 서고, AI가 구현하고, 사람이 검증합니다.
그리고 회사를 열려면 얼굴이 필요했습니다. 저희가 팔려는 것이 "문제를 정리해서, 작게 만들고,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라면, 회사 사이트부터 그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말이 됩니다. 말과 만듦새가 다른 회사를, 저희라면 안 믿을 테니까요.
그래서 회사의 첫 작업물은 이 사이트 자신이 됐습니다.
첫 작업물 — 코드가 가장 나중이었습니다
문서가 먼저였습니다. 무엇을 할 사이트인지, 무엇을 하지 않을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을 안 쓸지까지 문서로 확정했습니다. AI에게 맡길 일과 사람이 끝까지 쥘 일, 그 경계까지 문서에 있습니다.
화면이 그다음이었습니다. 다섯 장의 화면 프로토를 먼저 그려 그것을 명세로 삼았습니다. 코드를 쓰는 동안 "이게 맞나"를 고민할 일이 없도록, 고민은 프로토 단계가 다 했습니다. 만들면서 정하는 게 아니라, 정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코드는 마지막 이틀이면 충분했습니다. AI로 구현하고, 사람이 검증했습니다. 빨랐던 건 서둘러서가 아니라, 화면 참고 자산과 점검 목록 같은 판단 재료를 미리 쌓아 뒀기 때문입니다. 손이 빠른 게 아니라 판단이 빨랐습니다.
잠금도 기능보다 먼저였습니다. AI로 만든 실배포 앱 5,600개를 점검한 조사에서 1순위 사고는 화려한 해킹이 아니라 저장소를 잠그지 않은 기본값이었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털린 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남의 일에 들이대는 기준을 우리 것에 먼저 적용했습니다. 신청과 문의가 저장되는 곳은 바깥에서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잠그고, 폼 제출이라는 좁은 통로 하나만 열었습니다. 해결소에는 네 가지 질문으로 요청의 크기를 미리 가늠해 주는 장치를 넣어, 문의가 곧 상담 준비가 되게 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의 결정들이 전부 문서로 남았고, 이 글이 그 첫 장입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서 시작한 회사라, 손님에게 권하는 것도 같습니다. 크게 약속하는 대신, 작게 먼저 만들어 확인하자고.